안녕하세요???
저는 농구 팬이라서 이 곳에 가입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분을 소개시켜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혹시 김영희씨라고 아십니까?
진정한 농구인이라면 모국에 금메달을 안겨주기 위해서 피땀흘린
전직 농구선수 그것도 여자 선수인 분입니다.
김영희씨는 80년대를 풍미한 여자농구선수입니다. 84년 LA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87년 뇌종량 수술과 함께 코트를 떠났고, 이후 거인병으로 인해 20년이 넘도록 고통받아 왔습니다.
거인병으로 인해 외모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김영희씨에게 고스란히 상처로 돌아왔습니다. "저게 인간이냐", "남자야, 여자야" 등의 수군거림은 견디기 힘들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세상과 담을 쌓은채 온종일 집에서만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만의 세상에 꽁꽁 숨어사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그러나 98년, 암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간호하던 중 어머니가 뇌출혈로 먼저 세상을 달리하셨고, 그리고 불행은 계속됐습니다. 암투병을 하던 아버지마저 2000년 생을 달리한 것입니다.
(네이트 닷컴의 기사문에서 글을 옮깁니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항상 혼자될 딸을 걱정을 했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영희야, 네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이쁜이에요. 이쁜이"
김영희씨에게는 요즘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바로 '이쁜이'다. 동네 노인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그녀에게 이웃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김영희씨는 매주 독거노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정작 자신은 반찬 하나 없이 컵라면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도, 동지였던 지난 22일에는 팥죽을 쑤어 어른들을 모셨다. 처음에는 그녀를 꺼려하던 노인분들에게 이제 그녀는 딸 같은 존재다.
양말 부업으로 번 돈 전부는 아래층 단칸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녀가장을 돕는데 쓰고 있다. 양말 한 켤레 실밥을 뜯어 받는 돈이 12원임을 감안하면 그 어떤 돈보다 소중한 돈이다.
김영희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광명시에 위치한 '사랑의 집'을 찾아 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 김영희씨의 모습을 보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동네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는 사장님은 짜장면 봉사를, 양말공장에서는 수십켤레의 양말을, 택시기사분은 무료 운송을 도맡아 하는 등 김영희씨와 함께 '사랑의 집' 돕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김영희씨는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른다. 약물 치료로 병이 진행되는 것을 막고는 있지만 여전히 심장과 뇌를 비롯한 장기들이 계속 자라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밤에 눈을 감으면 혼자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전 이제 혼자가 아니거든요."
CBS체육부 박지은기자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
여러분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이 분을 그냥 모른척 하시겠습니까?
이 분을 본받아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분들도 계시겠죠?
선, 후배 분들도 분명히 계실겁니다.
이렇게 한국여자농구연맹이라는 모임도 있고, 분명 잘나가시는 선배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런분들이 계시다면 모른척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의 취지가 무었이겠습니까?
단순히 친목도모 일까요?
아닐겁니다. 분명히 이 단체도 농구인을 위한 단체입니다.
그리고 김영희씨는 연금과 소일꺼리로 번 돈을 사회에 모두 환원하고 계십니다.
동지에 이웃어른들께 팥죽도 대접하고, 장애우들에게 방문하여 같이 놀아주기도 하며, 자신은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체의 설립 목표인 농구인을 위한 농구인에 대한 농구인에 의한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우리 주위를 한번 되돌아볼때입니다.
이런글을 올려서 죄송하구요. 무단 복사를 해서 또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