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같은 낙엽이 쓸쓸히 떨어지는 10월의 마지막 밤, 정선민선수가 국민은행이 제시하는 내용대로 순순히 계약서에 사인을 했더라면 지금 항간에 나도는 정선민 은퇴 운운하는 충격적인 소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무난히 여자농구 사상 최고의 연봉을 받는 지존이 됐을 테고, 함께 자유계약선수가 된 몇몇 동료들이 그렇듯 따뜻한 난로를 쬐며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녀는 2억원이란 좋은 조건을 제시한 국민은행을 박차고 나왔고, 지금은 은퇴설이 나돌 만큼 흉흉한 세밑을 보내고 있다.
국민은행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것은 농구에 발을 담근 이래 그녀가 겪은 몇 안되는 좌절 중의 하나이었겠지만,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지금 어느 팀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배제돼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앞으로의 농구 역정에 궁극적으로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선민이 누구인가?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장밋빛 미래가 확보된 국내리그를 버리고 미국행을 선택하였고, 또 지금은 최고의 연봉을 제시한 국민은행을 박차고 나왔다.
미국을 다녀온 뒤 그녀는 참으로 오랜 기간을 방황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은 훌륭히 그것을 극복하고 지난 시즌에 엠브이피를 차지하며 국민은행을 리그 우승으로 올려놓지 않았는가.
지금 정선민은 그때처럼 다시 도전과 방황을 선택하는가 싶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가 밖에서 보기에, 그녀는 구단이라는 거대한 공룡과의 싸움에 참으로 과감히 자신의 농구생명을 건 것같다.
국민은행 프런트와 정선민 선수간의 관계가 나빠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는 선수로서 마지막 지키고 확보해야 할 원칙적인 무엇인가를 지키려 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팬으로서 이런 그녀를 지지한다. 그것이 비록 실패에 이를지라도, 그리고 마지막 단 한 사람으로 남을지라도, 구단의 획일적인 거대논리에 도전하고 싸우는 용감한 선수를 보고 싶다.
정선민이라는 이름은 어설픈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는 우리 농구계에서 아직도 많은 농구팬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드문 이름이다.
지금 이 시각, 포털 싸이트 네이버에서 벌이고 있는 농구 POLL에서 그녀의 코트 복귀를 바라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현실을 농구계는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농구도 역시 예외는 아니며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선민이나 전주원 같은 초대형 노장 선수들의 입지도 많이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정선민 파동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온고이지신이란 단어가 보여주듯 진정한 창조란 전통과 신예와의 조화로움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지금 우리 농구계 또한 노장과 신예와의 조화로움이 더욱 절실할 때이다.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대표팀에 완숙한 게임 리더가 몇 사람만 더 포함되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하지 않는 분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거대한 역사를 창조하고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사람 개개인이다. 그것이 독창적이고, 훌륭한 개개인이라면 더욱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정선민이, 아직도 오류투성이인 농구계의 구조를 갱신하고 창조해가는 훌륭한 선수가 되기를 바란다.그러나 구조에 적응하며 서서히 구조를 갱신해 나가는 원만한 선수이기를 또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는 팬으로서 아직도 정선민의 농익은 농구를 열렬히 보고 싶으므로.
농구지존 정선민,그녀의 코트복귀를 강렬히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