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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지우개...김화순

전장터와 같은 게시판을 대하다가 발견한 이름 하나.. 김화순
내가 중학교때던가..신문의 스포츠면에서 본 어느 여자선수의 레이업슛하는 흑백사진 하나.
삼성의 골게터 김화순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당시 농구에 무지했던 나는 골게터가 김화순의 포지션인줄 알았다..-

그리고 얼마뒤 일본에서 열린 ABC대회에서 처음 김화순의 모습을 보았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LA올림픽을 비롯 여러 국제대회에서 그녀의 플레이를 주목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하여 사라져버렸고,
그나마 떠오르는건 농구대잔치에서의 그녀의 활약상이다.
겨울에 벌어지는 농구대잔치라 손등을 덮는 장갑 - 지금 일본리그에서 몇몇이 끼던데 - 을 끼고 뛰던 그녀.
자유투라인에서 볼을 받아 너무도 '우아하게' 터닝슛을 터뜨리던 모습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문경자, 성정아의 부상으로 센터의 자리까지 소화해내야만 했던 시절..
그러나 이때 나는 농구에 대해 잘 알지못했고 단지 그녀의 외모와 득점력을 좋아한 듯 하다.

다시 시간이 지나 또다른 눈으로 동영상으로 접한 LA올림픽과 88서울올림픽때의 그녀.
LA올림픽에서 그녀의 피벗플레이..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볼을 잡아 상대를 마주하고 짧은 순간에 동시다발적인 현란한 훼이크로 너무도 가볍게 상대를 제쳐버리다니..
그러나 88올림픽때의 모습은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실망이었다.
아마 무릎부상때문인지 플레이 자체가 다운되어있는 모습이었으니까.

고교시절 센터출신..실업팀에 와서 포지션변경으로 밤이 깊을때까지 슛연습을 했다던 그녀..
고3때부터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의 실력..
- 지금처럼 6개팀에서 12명 뽑는, 것두 용병제외하면 2:1의 경쟁률이 아닌..선수들의 꿈이 태극마크이던 시절 -
중국에서 두려워했던건 박찬숙이 아닌 그녀였다는점..
아쉽다..너무 아쉽다..
내가 농구에 대해 무지하던 시절 그녀를 보았기에..
만약 지금의 눈으로 그녀의 화려한 플레이를 볼 수 있다면..
난 너무도 행복해하고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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