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폭행당한 선수 도리어 “감독님, 죄송해요”…왜?
[한겨레] 김동훈 기자
등록 : 20111202 17:22 | 수정 : 20111202 18:03
‘락커룸 폭행’ 김광은 감독 자진사퇴 사실상 해임
과장 보도 여지 있는데…감독 내쫓고 선수들 입막아
» 우리은행 박혜진
“김 기자님! 경기와 상관없는 질문을 하셨대요.”
1일 저녁 8시7분. 기자는 어이없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우리은행 여자농구단 김아무개 부장. 그는 이날 경기도 구리체육관에서 열린 케이디비(KDB)생명과 우리은행의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실에서 선수들 인터뷰를 막 끝내고 나온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마치 감시라도 당한 기분이었고, 심각한 취재활동 방해였다. 김 부장은 어이없어 하는 기자에게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기자들 분위기와 동향을 파악해 달라는 말투로 들렸다. 이 보다 10여분 전 쯤엔 조혜진 감독대행이 인터뷰실에서 한 발언의 일부를 쓰지 말아달라는 우리은행 구단의 전갈도 왔다. 인터뷰 직전에는 몇몇 기자에게 “회식하러 가야하니 인터뷰 빨리 끝내달라”는 상식 이하의 요구까지 했다.
우리은행은 이날 케이디비생명을 꺾고 12연패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크게 웃을 수 없었다. 박혜진 폭행 논란으로 김광은 감독이 ‘자의 반 타의 반’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박혜진을 벽에 밀치고 멱살을 잡았다”는 11월 30일치 <중앙일보> 보도에 따라 ‘폭행 감독’으로 몰려 다음날 사퇴했다. 우리은행의 발표는 ‘김 감독 자진 사퇴’였지만 실제는 구단의 요청에 따른 조처였다. 하지만 이날 경기 뒤 조혜진 감독대행, 주장 임영희, 고참선수 김은혜 등의 증언을 통해 중앙일보 기사가 심각하게 과장됐음이 드러났다. 김 감독도 “벽에 밀친 적도 없고 멱살도 잡지 않았다”며 폭행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심한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박혜진도 김 감독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감독님 지금 말로 표현못할 만큼 힘들고 괴로운신거 알아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꼭 명예회복시켜드릴게요”라고 했다. 박혜진의 아버지도 김 감독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혜진 엄마의 일처리 부그럽기 짝이 없습니다. 제 딸아이의 인성교육 제대로 못시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박혜진은 김 감독의 명예회복을 위해 기자들과의 인터뷰에도 응하기로 했었다. 김 감독도 우리은행 구단 김 부장에게 ‘박혜진 인터뷰’에 대한 협조를 구했고 승락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은행 구단은 1일 구리체육관에서 박혜진을 이리저리 숨기면서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구단 차량에 몸을 감췄던 박혜진도 갑자기 마음을 바꿔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남겼다.
우리은행 구단은 <중앙일보> 보도가 나온 11월30일, 오전까지만 해도 “보도가 잘못됐다. 박혜진 엄마와 언니(박언주 선수)가 제보한 것인데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김 감독과 선수들 면담을 토대로 보도·반박자료도 내보낼 참이었다.
&raquo; 김동훈 기자
하지만 이순우 은행장의 한마디 ‘지시’에 감독이 목이 잘렸고, 선수들의 ‘입’은 막혔다. 경기 뒤 공식 인터뷰를 하고 나온 조혜진 감독대행과 두 선수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고, 특히 박혜진 폭행 시비와 관련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대답했는지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기자가 어떤 질문까지 했는지도 파악한 뒤 기자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이순우 은행장은 과거 박명수 우리은행 감독의 선수 성추행 파문 때 여자농구단 단장을 맡고 있었다. 관리 책임을 물어야 될 위치에 있었지만 이후 승승장구 해 은행장까지 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실을 명명백백 조사하지도 않고 서둘러 감독을 해임하고 선수들 입을 틀어막는 선에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럴수도록 우리은행의 이미지는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