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해야지.” “은퇴할까.” “은퇴할 거예요.”
‘은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정선민(185㎝·천안 국민은행). 올해 나이 벌써 서른하나. 농구공을 잡은 이래 줄곧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로 자리잡아 온 그녀지만,이제 경기를 마칠 때마다 긴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경기 내내 다른 선수들에게 치이고 밀리면서 넘어지고 구르기를 수차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코트를 빠져나오는 그녀의 표정에는 ‘이제 정말 힘들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왜들 그렇게 거칠게 수비들을 하는지,다들 제가 미운가봐요. 이제 정말 은퇴해야겠어요.” 오른쪽 발목을 주물럭거리며 그녀가 내던지는 말이다. 지난해 6월 일본에서 오른발목 수술을 받은 정선민은 아직도 수술 부위에 통증이 남아있는 상태. 발목 수술 때문에 지난해 아테네올림픽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약 1년간 휴식기를 가졌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 1년 동안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이제 농구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입버릇처럼 ‘은퇴’를 말하는 이유는 또 있다.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장에 나온 3년차 가드 김진영(21·166㎝)과 나란히 앉아 정선민은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애들이 너무 잘해요. 이제 제가 은퇴할 때가 됐나봐요.” 또 은퇴 타령이다.
‘은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녀의 얼굴에는 ‘베테랑의 여유’가 가득하다. 그녀가 되뇌는 ‘은퇴’는 “이제 할 건 다했다”는 완료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는 노장의 비장한 출사표이기 때문이다.
by 스포츠투데이 허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