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WKBL 겨울리그에서 춘천 우리은행이 우승 청부사 캐칭의 파워풀한 경기력에 힘입어 영광의 우승 반지를 끼게 되었다. 그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불빛 뒤로 쓸쓸한 뒷모습을 보인 한 선수의 눈물. 한국 여자농구의 제왕이자 슈퍼에이스 정선민이 바로 그녀였다.
지난 겨울리그. 지방에 살고 있는 팬으로서 그리 많지는 않지만 시혜와도 같은, KBS나 SBS의 중계방송을 통하여 지켜보는 그녀의 경기 내용은 분명히 예전같지 않았다는 개인적 결론이었다. 기록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조금씩 체력저하가 보였고, 어시스트는 살아났지만 매 경기마다 20점 이상씩, 심지언 30점도 훌쩍 넘기던 득점력은 상대의 강한 수비에 묶여 슬슬 15점대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강하는 득점력이 그녀의 경기를 지켜보던 대부분의 해설자분들로 하여금 체력저하라고 진단을 내리게 한 큰 이유였다. 한국 여농사상 가장 걸출한 농구선수임에 틀림없는 그녀의 성장과 영광을 주욱 지켜보는 팬의 입장에서 상당히 가슴아픈 이야기이자,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결론이기도 한, 그러나 그녀가 이끄는 국민은행팀이 4강에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올 여름 들어 정선민은 다시 예전의 정선민으로 되살아난 듯하다. 1라운드 평균 득점 19.20점, 리바운드 7.4개, 어시스트 4개의 수려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그녀가 겉으로 보여주는 이러한 결과물이 단순히 개인기록 수치상으로만 빼어난 게 아니다. 흔히 스타선수라면 당연히 보여주는, 승부처이거나 팀의 고비일 때 반드시 나타나는 클러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가 팬으로서 정선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고도 간단하다. 정선민은 한국 농구계에서 보기 드믄, 어쩌면 영원히 볼 수조차도 없을, 농구선수로서 갖추어야 할 하드웨어적인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선수이기 때문이다. 득점력, 리바운드힘, 수비력, 패스 능력, 어시스트의 손끝맛, 속공 능력, 전코트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까지 농구선수가 가져야 할 모든 기술을 갖춘 선수가 그녀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연예인으로 친다면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학생으로 친다면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할 것이 없이 다재다능한 정선민은 그러나 한 때 한국 농구계의 걸출한 센터 정은순을 상대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 센터 포지션에 묶여있어야 했다. 정선민은 지난 리그부터 파워포워드로 위치를 변경한 뒤 조금은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고, 이것 역시 경기 후반 체력저하의 원인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정선민은 훌륭하게 그것을 소화해 내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라 했던가? 새로운 포지션을 담당한 이후, 정선민은 기라성같은 후배 선수들 앞에서 神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은 채 맹렬히 달려들어 드디어 무언가를 이루어 내었다. 정선민의 여름 리그 1라운드 MVP 수상을 그런 의미에서 열렬히 축하하는 바이다.
32살의 그녀에게 전성기의 체력을 요구한다면 팬으로서 예의가 아니리라. 이번 리그에서도 예외 없이 한 후배 선수와의 격돌에서 무릎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러나 대신 그녀는 그만큼 많은 경험으로 노련해졌으며 반드시 그러한 체력적인 어려움들을 노련함으로 이겨내리라 믿고 싶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한국 농구계의 슈퍼 에이스답게 빠르게 변화하는 코트에 맞추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 여전히 자리를 지킬 뿐이다. 나는 이후에도 여전히 이 자리에서 정선민을 기다릴 것이며, 그녀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조금씩 변모해 간 모습으로 우 ~ 뚝! 서 있을 것이다. 게임이 다운될 때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후배 선수들을 독려하며 다그치는 그녀의 파워플한 스타기질을 영원히 보고 싶다.